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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2.22 청킹맨션, 왠지 모르게 끌리는 곳 1




청킹맨션, 미라도맨션은 낡은 아파트에 싸구려 여인숙이 몰려 있는 곳으로 구룡성채와 함께 "악의 소굴"로 통하는 곳입니다.
외지인이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는 못 나가는 곳으로 유명하지요. 실제로 입구에 서 있는 흑인과 인도인, 아랍인, 베트남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중남미인 및 중국본토인 삐끼들과 마주치게 되면 당혹스러울 겁니다.
이 빌딩의 또 다른 별명은 "작은 지구 마을" 입니다. 그 이유는 한 빌딩 안에 그야말로 여러 나라의 여러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빌딩 안에 있는 싸구려 여인숙에는 홍콩 드림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육체노동으로 고단하게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부터 서양이나 일본에서 온 배낭 하나, 지도 하나만 가지고 홍콩을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실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청킹맨션입니다. 숙소는 A동, B동, C동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동의 엘리베이터에는 범죄방지를 위한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숙소는 그 중 A동의 숙소가 가장 안전하고 깔끔합니다. 그 이유는 A동에 묵는 배낭여행자들이 제일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양인이나 일본인이 묵는 숙소들은 거의 A동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A동의 숙소들은 거진 리모델링이 잘 되어 있어 청결도에 있어서는 문제없는 편이고 치안도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특히 타이완호텔 같이 평판이 좋은 여인숙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B동과 C동은 주로 인도나 아랍 등 제3세계에서 돈 벌러 온 육체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곳으로 값은 매우 싸지만 시설은 매우 더럽고 형편없습니다. 물론 진짜 돈이 없을 경우에 값싼 방을 구할 수 있다는 이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설이 너무 더러운 것은 물론이고 치안도 매우 형편없습니다. 자다가 마약주사를 맞았다거나 방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은 기본이고 더 끔찍한 경험담도 종종 들리는 곳입니다. 여자 혼자서 묵기에는 조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번화가인 침사추이 한 복판에 이런 던젼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악의 소굴이 들어섰느냐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청킹맨션이 처음 지어진 해는 1961년입니다. 당시 이 아파트는 침사추이의 나단로드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지금도 접근성은 매우 뛰어납니다. 지하철 침사추이역도 가깝고 버스도 많이 지나갑니다) 원래 이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중국계 부자들과 영국계 홍콩인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신 고층아파트였던 청킹맨션은 유리한 입지 등의 호재로 집값이 매우 비싸 주로 부자들이 사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홍콩 부자들이 중국반환이 가까워지자 호주나 캐나다로 이민가게 되면서 아파트에 점점 빈 집이 늘기 시작합니다.
빈 집에는 중국본토에서 건너온 광동인 육체노동자들이나 인도, 파키스탄 출신의 외국인들이 하나둘씩 입주하기 시작했고 영국계 홍콩인들까지 이 곳을 떠나 리펄스베이나 스탠리, 홍함 등으로 옮겨가면서 기어이는 1990년대 들어서 싸구려 여인숙과 인도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곳으로 변하게 됩니다. 과거 고급아파트로 명성을 날리던 청킹맨션은 불과 30년만에 건물의 노후와 함께 마치 제3세계에 온 듯한 "이상한 빌딩"으로 변해버립니다.
어느새 청킹맨션의 상권은 인도인들이 잡게 되었고 이들은 배낭여행자나 자국 출신 노동자들을 위해 싸구려 여인숙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국 노동자들의 식사를 위해 인도 음식점도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뿐만 아니라 이란이나 가난한 아랍국가 등 중동에서 온 노동자들이나 동아프리카 출신 흑인들도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합니다.
아랍인들 역시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청킹맨션의 상권을 잡게 되었고 아랍식당들도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특히 청킹맨션 바로 옆에는 이슬람사원인 카우룬 마스지드가 있기 때문에 이슬람국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이곳으로 몰려오게 됩니다. 이들 인도인, 아랍인들은 주로 자국 출신이 경영하는 식당이나 여인숙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인숙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여인숙끼리 경쟁이 붙어 여인숙 호객꾼(삐끼)로 일하는 인도,아랍인의 숫자도 늘게 됩니다.
이들 삐끼들은 숙소삐끼 말고도 야매로 가짜 명품을 파는 일도 합니다. 원래 홍콩은 가짜명품, 즉 짝퉁반입이 엄격히 제한됩니다. 그래서 짝퉁을 파는 곳은 상점이 아닌 주로 노점상에서 야매로 판매하는 식이 됩니다. 삼수이포에서도 가짜명품 노점상을 하는 본토 중국인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제일 악명높은 곳은 바로 청킹맨션 앞입니다. 이곳에서는 대놓고 "copy Rolex"를 외치는 삐끼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한국어,일본어까지 배워 와서 친절하게 "아저씨 짝퉁사세요"라며 어눌한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친구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물론 100% 중국산이기 때문에 품질은 별로 보장할 수 없습니다만;;;(아무래도 이태원에서 파는 A급 이미테이션이 품질은 더 좋겠지요?)
청킹의 치안상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불안합니다. A동은 그래도 배낭여행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는 훌륭한 숙소들이 많이 있고 홍콩정부의 지도,단속으로 리모델링도 잘 되어 있고 청결하게 유지됩니다. 당연히 치안도 좋은편에 속합니다. 물론 가끔씩 사고치는 친구들이 있지만 옆 동에 비하면 거의 애교 수준입니다.
그러나 B동과 C동, 특히 C동의 치안상태는 매우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간혹 청킹이 생각보다 안전했다는 글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아마 A동에 묵거나 B동의 조금 괜찮은 곳에 묵지 않았나 싶습니다. C동은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이들은 주로 불법체류자가 많기 때문에 신분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이 묵으면 돈을 빼앗고 싶은 나쁜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이를 행동에 옮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돈을 모두 털렸거나 짐이 없어졌거나 하는 식의 어이없는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청킹맨션의 여인숙들의 공통점은 한국 고시원처럼 방이 매우 좁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독가스가 매우 쉽게 퍼져 화재발생 후 3분만 되도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복도가 매우 좁기 때문에 화재발생시 도망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 역시 화재에 매우 취약하며 고층에 묵었을 경우에는 화재가 발생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96년에 한번 청킹맨션에 화재가 발생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특히 몇몇 방은 창문이 아예 없는 구조라서 피해가 더 심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홍콩차이나 정부는 소방법을 적용하여 기준에 맞지 않는 곳은 폐쇄하거나 구조개선을 명령했으며 소화기,소화전도 동 곳곳에 층마다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소방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청킹맨션은 그 특유의 구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인 게 사실입니다.
이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경찰의 불심검문입니다. 워낙 불법체류자가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보니 경찰과 이민국이 합동으로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경찰은 불법체류자 말고도 청킹에 은신한 수배범을 검거하기 위해서 불심검문을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킹맨션도 구룡성채와 마찬가지로 수배범들에게 좋은 은신처가 되고 있으며 이들이 투숙객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경찰이 항상 방마다 돌아다니며 불심검문을 벌입니다.
그래서 이 곳에 묵다 보면 경찰이 문열으라고 하면서 들이닥쳐 방을 뒤지거나 여권을 검사하는 일도 자주 겪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이 불심검문이 강화되어 치안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직도 음성의 루트로는 마약거래나 매춘, 도박이 성행하지만 겉으로 여행자가 느끼기에는 매우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 되었습니다. 숙소 삐끼나 짝퉁 삐끼는 여전히 끈질기지만 이들은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면 절대 따라붙지 않으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엘리베이터에는 모두 CCTV가 설치되어 강도 등 범죄를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퇴직경관 출신의 경비원도 고용하여 자주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청킹맨션의 최대의 장점은 바로 먹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빌딩 전체가 먹자골목이라고 할 정도로 훌륭한 인도음식점, 아랍음식점이 많이 있습니다. 인도음식은 북인도식과 남인도식이 모두 있으며(주로 북인도식이 많음, 홍콩체류 인도인은 대부분 북인도인 무슬림이기 때문) 카레와 탄두리치킨, 난, 인도의 가정식백반인 탈리정식 등을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잇습니다. 아랍음식점 역시 싸고 맛있으며 케밥이나 흠모스,쿠프타,코샤리 등 낯선 아랍음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청킹맨션은 구룡성채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악의 소굴이라고 할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습니다. 구룡성채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매춘이 성행하고 마약이 거래되며 불법체류자들이 득실거립니다. 물론 공공연히 어둠의 요소들이 튀어나와 있는 구룡성채와 달리 이 곳은 어둠의 요소들이 철저히 숨어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른 점입니다.
청킹맨션을 겉에서 보면 참 아이러니하고 이상합니다. 휘황찬란한 간판으로 도배되어 있는 멀쩡한 홍콩 한복판인 침사추이 그것도 골든마일이라 불리는 나단로드 한복판에 그런 이상한 빌딩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고, 주변의 화려한 풍경과 낡은 청킹의 건물이 서로 대조되어 무언가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더 아이러니 한 것은 세계적인 체인호텔인 홀리데인 인 골든 마일 호텔이 이 청킹맨션과 거의 붙어있다 시피 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호텔의 뷰는 청킹맨션과 미라도맨션 덕분에 매우 좋지 않습니다 ㅡ.ㅡ;;;
최근에는 건물의 노후가 심해져 철거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따져보면 이 이상한 빌딩도 홍콩의 명물입니다. 스타페리,트램,백만불야경만 홍콩의 명물이 아닙니다. 청킹맨션은 비록 악명높은 곳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이곳을 빼고 홍콩을 논하기가 부자연스러울 만큼 홍콩의 인상깊은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곳이 철거되면 구룡성채, 카이탁공항 만큼 우리에게 아쉬움을 줄 것 같습니다. 안좋은 이미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미 홍콩의 또다른 명물로 굳어졌기 때문에 청킹맨션 없는 침사추이는 어딘가 허전합니다. 새것에 밀려 옛것이 자꾸 사라지는 추세가 안타깝습니다.
posted by angelyr